중년의 사랑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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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거래처 접대를 하는 날이다.


사실 술을 마시는 건 좋아하지만, 이런 술좌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기분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야 하고, 마음대로 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열 받는 건, 술좌석 중에 부킹을 하게 되면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먼저 상납을 해야 되니..(ㅠ.ㅠ)


회사 퇴근하면서 약속된 장소인 H동 로타리에 있는 일식집으로 간다.


종업원에게 안내된 방으로 들어서니, 벌써 두 사람이 와 있었다.


“어이구! 벌써 와 있었네요!”


“어서 오세요!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맞은편 좌석에 앉는다.


한명은 C기업 공무과 과장인 장지용이란 친구고, 한명은 같은 과 대리인 조성호란 친구다.


우리 회사 주 거래업체 인데, 이 친구들이 실무 담당자들 이다.


장지용이란 친구는 키가 약 180cm정도로, 마른 체형에 나이가 마흔 초반인데 성격이 좀 세심하고 술보다는 여자를 밝히는 타입이고, 조성호란 친구는 키가 165cm정도로 작은 편이고, 자기말로는 왕년에 운동을 좀 했다는데, 덩치도 별로 없는 사람이 항상 어깨에 힘을 넣어 다닌다.


좀 우스꽝스럽다고나 할까.. 나이는 서른 후반 이다.


음식이 순서대로 들어오고, 술도 한잔씩 나눈다.


“김부장님! 요즈음 납품되는 기계들이 전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오늘 확실히 하라는 이야기다.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앞으로 신경을 더 쓰겠습니다!


오늘은 업무적인 이야기보다 즐겁게 한잔들 하시고, 재미있게 노셔야죠?”


옆에서 조성호란 친구가 바람을 넣는다.


“그러죠! 과장님! 그 이야긴 내일 하시고, 오늘은 기분좋게 한잔 하시죠!”


백세주를 곁들여 일식요리를 먹고, 조금 얼큰한 상태가 되어 일식집을 나온다.


“장과장님! 조대리님! 요 옆에 OO나이트가 물이 좋던데 거기로 가시죠?”


“그래요? 어이! 조대리! 거기로 한번 가볼까?”


“그러죠! 과장님!”


조금 걸어서 OO나이트로 간다.


나이트 입구에서 ‘옥경이’를 찾는다. 내 단골 웨이터이다.


금방 그 웨이터가 쫓아 나온다.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 동안 발걸음이 뜸하시더니.. 어서 들어가세요!”


“오늘 물 어때요?”


“저희야 항상 좋죠!”


“우리 룸 하나 줘요!”


홀에서 마시는 것보다 룸에서 마시는 것이 부킹도 확실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이 나이에 스테이지에서 땀 빼며 헌팅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단골웨이터가 여자에 대한 내 취향을 아니까 실수가 없다.


룸에 들어와서 양주를 시킨다.


‘옥경이’가 룸에 따라 들어와서 즐거운 시간 되시라고 인사를 하고 나간다.


내가 따라 나가며 ‘옥경이’를 불러 세운다.


“아! 왜요? 사장님!”


“다름이 아니고, 같이 온 친구들이 거래처 손님들인데 오늘은 내 취향보다 저 친구들 취향을 맞춰야 되니까 저 친구들 오케이 할 때까지 부킹 좀 신경 써 달라고..” 하면서 만원짜리 몇 개를 집어준다.


“아이구.. 사장님! 척하면 삼척이지요!


안 그래도 보니까 그런 거 같던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눈치가 빨라야 이 계통에서 살아 남는다.


양주가 셋팅되고 한잔씩 마신다.


“즐거운 이 밤을 위하여!”-------------> 나


“오늘 마시고 죽자!”-----------------> 조대리


서로 술잔을 주고 받고 노래를 찍어 부른다.


장과장이란 친구는 노래를 골라서 부르는 편인데 나름대로 꽤 신경을 써서 노래를 부른다.


조대리란 친구는 이 노래, 저 노래.. 무대포 정신으로 부르는 타입이고..


노래가 두어 곡씩 돌아갈 무렵.. 룸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줌마 세 명이 들어온다.


내가 봐도 별로다. 사이 사이 앉아서 같이 술을 따라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같이 노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물이나 몸매.. 노는 게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장과장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다. 내가 나서야 겠다.


“아가씨들! 우리 조금 있다 나가야 되는데..”


“아.. 그래요? 우리도 지금 가야 되는데..


아저씨들 잘 놀았어요!”


여자들이 나가고 조금 있다 ‘옥경이’가 들어온다.


“오늘은 영 물이 안좋네? 이거.. 내 체면이 말이 아닌데!”


“아이구! 사장님! 죄송합니다!


적당한 여자들이 안 보여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 명예를 걸고 다시 부킹시켜 드리겠습니다!”


90도로 인사를 꾸뻑하고 나간다.


“자! 자! 한잔씩 합시다!”


“김부장님! 물이 좋다더니 어떻게 된 거요?”


조대리가 이마에 넥타이를 맨채로 날보고 이야기한다.


“아! 글쎄.. 말이요! 이 집도 이젠 다 됐나?


자 한잔씩 드시고 한번 더 기다려 봅시다!”


다시 술마시고, 노래 부르고, 출추고…


오늘의 기쁨조는 조대리란 친구다. 곱사춤.. 해드벵잉... 난리부루스다.


나도 적당히 기분 맞춰주며 놀고 있는데..


다시 노크소리가 들리며, 아줌마 세명이 들어온다.


이번엔 눈이 확 뜨인다.


‘옥경이’가 심혈을 기울인 듯.. 아마, 위기의식을 느꼈겠지..


한명이 군계일학이고, 그 다음 하나는 수준급이고 나머지 하나가 좀 빠진다.


군계일학은 장과장 옆으로..수준급은 조대리 옆으로.. 나는 좀 빠지는 여자로 파트너를 정한다.


군계일학이 날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이다.


하지만, 어쩌랴..접대자리가 아니면, 목숨걸고 쟁취하련만..


간단히 인사를 나눈다.


군계일학이 이름이 김인숙, 나이는 보기에 삼십대 중,후반..


수준급은 이름이 장미주, 나이는 보기에 삼십중반..


좀 빠지는 여자는 이름이 백수연, (이름은 셋중에 제일 낫다.) 나이는 보기에 삼십 초,중반..


같이 브라자(브라보+지화자)를 외치고, 술한잔씩 마신다.


노래솜씨나, 춤솜씨나, 애교 떠는 거나 역시 내가 본 순서다.


군계일학..인숙이는 계속 나에게 아쉬운 눈빛을 보내고..아휴! 환장할 지경이다.


실컷 마시고, 부르고, 춤추고, 주무르고..새벽 한시가 다 되어 나이트에서 나온다.


여자들에겐 차비하라고 십만원씩 쥐어주고..


장과장이 제 파트너가 마음에 드는 듯..


“김부장님! 제가 한잔 살 테니까 요앞에 호프집에 가서 한잔 더 합시다!”


할수있나… (사긴 누가 사?)


“예! 그럽시다!”


여자들은 내게 받은 돈 때문인지 순순히 따라온다.


파트너들끼리 팔짱을 끼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니 호프집이 하나 보인다.


호프집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맥주를 시킨다.


이젠 술들이 많이 취해 술 마시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것에 반비례해서 말들은 더 많아지고..


이젠 노골적으로 파트너들을 주물럭거린다. 어허! 주위에 다른 손님들도 있는데.. 안되겠다.


“장과장님! 조대리님! 시간도 많이 됐는데 이젠 그만 일어서죠?”


“어.. 그래요? 음.. 보자! 벌써 세시네?


어이! 조대리! 그만 마시고 가야지!”


“과~장님! 그~러죠! 어~ 취한다!”


내가 못을 박는다.


“그렇게 하죠! 내일 일도 해야 되는데..


다음에 토요일날 날 한번 제대로 잡아서 뿌리 뽑읍시다!”


밖에 나와서 장과장은 오십만원, 조대리는 삼십만원을 호주머니에 찔러주고, 택시를 태워 보낸다.


여자들도 택시를 잡아준다.


군계일학.. 인숙이가 날보고


“김부장님! 오늘 너무하세요! 사람이 그렇게 둔해요?”


“허어! 그게 아니라..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어쩔수가 없어서..”


“자! 이거요..”


나한테 접은 쪽지를 내민다. 펼쳐보니 폰번호다.


“시간날때 전화한번 주세요!”


여자들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온다.


<인숙의 이야기>


요즈음, 남편과는 별거중이다.


몇 년전, I.M.F.왔을 때 기계부품 판매업을 하던 남편은 갑자기 곤두박질 친 매출과 수금 해 놓았던 어음들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는 바람에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서 손을 들어 버렸다.


친정집이나 시댁에서 갖다 쓴 돈은 불구하고, 은행에 저당 잡힌 아파트, 그리고, 세무서에 연체 된 세금들…


그 여파는 그 동안 별 어려움 없이 집에서 살림만 했던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I.M.F. 극에 달했던 98년도 당시 남편의 나이가 마흔이고, 내가 서른 일곱이었으니..)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생각하고, 주위의(친정, 시댁, 친구들..) 도움을 조금씩 받아 가면서, 서로 노력을 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사자가 자포자기를 해 버리니, 방법이 없었다.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거의 매일 술에다가 뭘 해 보려는 의욕도 없이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물론 그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알뜰히 저축하여 모은 돈을 밑천으로 성실히 노력을 하면서 가게를 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울며 매달려 하소연도 하고 또, 달래기도 하면서 시간이 좀 흘러가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기다렸지만, 이 삼년이 다 가도록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이젠 무기력이 아예 몸에 배여,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귀찮아 할 정도였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들도 있고, 생활을 하여야 했기에, 할 수 없이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기약 없이 남편이 정신 차리기를 기다리며…


처녀 때 패션계통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다행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수입은 넉넉치 못해도, 그냥 목구멍에 풀칠은 하고 살았다.


I.M.F.가 막 시작됐을 때 아무래도 불안하여, 남편 몰래 마련해 둔 비자금이 좀 있었다.


남편이 부도 직전까지 몰려서 허덕일 때에도, 이 돈만큼은 내 놓지 않았다. 생명줄이라고 믿었기에…


어제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오랜만에 같이 직원들과 횟집에 가서 술을 한잔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내가 처한 상황이 갑갑했던 터라 별로 사양도 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그러다 보니, 꽤 취하는 것 같다.


내가 술은 조금씩 하는 편이다. 주량이 소주는 한 병 정도이고, 맥주는 네댓 병 정도..여자치고는 꽤 하는 편이다.


회식이 끝나고, 횟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오려는데, 같이 일하는 동생 둘이 날보고 같이 나이트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고 한다.


나를 많이 따르는 동생들이다.


부킹만 잘 되면 술도 공짜로 마시고, 임도 만난다나?


남자야 진절머리가 나지만, 술이 조금 오르다 보니, 괜히 마음이 울적해 지고 속에서 불 같은 것이 치밀어 오른다.


아무래도 풀고 가는 것이 좋을 듯 싶어 못 이기는 척하고 같이 H동 OO나이트로 간다.


홀에서 맥주 기본만 시키고 앉아서 스테이지에서 흘러 나오는 경쾌한 음악과 사람들이 미친 듯 흔들어 대는 모습을 바라보니 어느 정도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다.


옆에 앉은 두 동생들이 홀에 나가서 흔들자고 부추겨서 나갈려고 일어 서는데, 웨이터가 다가 와서 룸에 점잖은 남자분들 세 명이 있는데 부킹을 하시겠느냐고 물어 본다.


웨이터의 명찰을 보니, ‘옥경이’ 다.


무슨 남자의 이름이 ‘옥경이’ 냐? 물론 웨이터의 예명이겠지만..


“언니! 가요! 웨이터의 이야길 들어 보니 괜찮겠는데?”


둘이서 날보고 재촉하는 표정이다.


그래! 기왕이면 공짜로 술 마시고 놀아보자! 혹시, 못된 짓 하면 나와 버리면 되니까…


셋이서 웨이터를 따라 룸으로 간다.


룸에 들어 가보니 사람들은 그런데로 괜찮아 보인다.


한명은 나이가 좀 든 듯한데, 젊었을 땐 여자들이 좀 따랐을 것 같은 인상이고, 또, 한 명은 키가 좀 크고 사람이 좀 세심하게 생겼는데, 자존심이 셀 것 같은 인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여자들을 좀 피곤하게 만들 타입이다.


나머지 한 명은 키가 제일 작고, 뭐랄까? 좀 머리가 빈 것 같은..(미안 하지만..)좋게 이야기하면 속없이 사는 사람이랄까?


물론 세 명중에 편하기는 세번째 남자가 제일 편할 것 같은데..내 타입이 아니다.


키 작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을 싫어 하니까..


나이도 그렇고, 인상도 그렇고, 역시 첫번째가 그 중 낫다. 그 남자 역시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고..


근데.. 이게 웬 일이야?


이 남자가 두번째 남자(키 크고 세심하게 생긴..)의 자리 옆에 앉으라고 한다.


어휴! 피곤하게 생겼네!


각각의 파트너를 정하고, 간단히 수인사를 한다.


그 중 낫다고 한 남자의 이름이 김정수이고,(나이가 아마 사십 중반 정도..)


내 파트너의 이름이 장지용이고, 또 한명의 이름이 조성호란다 두 사람은 좀 어리게 보이고...


술 마시며 이야길 하는 걸 들어보니, 김정수라고 한 사람이 나머지 두 명을 접대하는 것 같다.


그럼…할 수 없지! 그래도 둘 중에 상사인 듯한 남자 옆에 앉히니 나를 좋게 봤다는 이야기 아닌가? 위안을 삼아야지..


아니나 다를까.. 노래 부르고 춤 추는 중에 내 파트너..지용씨가 은근슬쩍 몸을 만져 온다.


이 남자 봐라? 확 나가 버려?


참자! 나에게 관심을 보여준 사람의 체면을 위해.. 더군다나 접대자리 아닌가?


술도 양주로 고급 술을 얻어 먹고 있는데..


더 이상 깊게 만지지 못하게 그때 그때마다 몸을 틀며 나름대로 견제를 한다.


어느 정도 놀다가 시간이 되었는지 정수씨가 계산을 치르고, 두 사람을 다둑거려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정수씨가 오늘 같이 놀아줘서 고맙다며, 차비하라고 십만원씩 쥐어 준다.


보통 때 같으면 받지 않겠지만, 정수씨 개인 돈은 아닌 것 같고(접대비 일 테니까..)


돈을 받는다. 또, 내가 받아야 동생들이 받을테고..


정수씨와 무작정 헤어지는 것도 아쉽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택시를 기다리는 데, 내 파트너 지용씨가 아쉬운지 한잔 더 하자고 한다.


물론 시간이 많이 됐지만, 남편에게 자극도 줄 겸, 정수씨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어 같이 따라간다.


이젠 술들이 많이 됐는지 횡설수설 한다.


정수씨는 술이 좀 덜 취했는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 같고..


화장실에 볼 일보러 가면서, 백에서 수첩 뒷장을 하나 찢어 내 폰번호를 적어 두 번을 접는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는데, 이젠 지용씨가 노골적으로 몸을 만져 온다.


짜증이 난다. 물론 술에 취하다 보니 그렇겠지만..


정수씨가 상황을 보더니, 시간이 많이 됐다며 이젠 나가자고 다둑거린다.


호프집에서 나와 그 두 남자(지용씨와 성호란 남자)는 택시타고 먼저 가 버리고, 정수씨가 여자들을 위해 택시를 잡으려 한다.


이젠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에 술기운을 빌려 한마디 한다.


폰번호를 적은 쪽지를 쥐어 주면서..왜? 마음이 있으면 대쉬하지 못 하느냐고…


집으로 돌아오니 세시 반이 넘어 있다.


남편은 또 술을 한잔했는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정말 원망스럽다.


차라리 눈을 부릅뜨고, 왜 늦느냐고 손찌검이나 하던지..바로 전까지 다른 남자를 잠시나마 마음에 품었었는데...


옷을 갈아 입고, 욕실에 가서 간단히 씻고 안방으로 들어 올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 자고 있다. 코를 골면서...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 가던지.. 마누라를 누가 업어 가던지 말던지..


예전에는 사람이 어떻게든 해 볼려고 아둥바둥하고, 열심히 살던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언제나 정신을 차릴련지…


그 놈의 I.M.F. 가 원망스럽다.


그 이후 일상적인 날들이 흘러가고, 회사일이 바쁘다 보니 전화연락을 하지 못했다.


물론 생각이 안 났던 건 아니지만, 일부러 연락하기도 그렇고..


어쩌다 보니, 폰번호를 적어 놓았던 쪽지도 잃어 버리고, 좀 아쉬운 마음은 들었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하루는 퇴근 후, 술생각이 나서 집 부근에 차를 대어 놓고, 한번씩 들리던 동네에 있는 실내포장 술집으로 간다.


코너가 다섯개 있는 규모가 좀 작은 술집인데, 아담한게 말 그대로 가족적인 분위기로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놀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코너 마담들이 다 나이가 들었는데, 유독 한 코너의 마담만 나이가 젊어서(서른 중반) 그 코너에 단골로 다닌다.


“어? 오빠!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디 좋은 데라도 생겼는 모양이죠?”


“어허! 무슨 소리! 내가 좋은 데가 어딨어?


미희가 안 좋다는 데 누가 날 좋아하겠어? 요새 일이 좀 바빠서…”


“어머머! 내가 오빠 얼마나 좋아 하는데..”


“말로만 그러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줘야지!”


“오빠! 또.. 그 소리! 맥주로 줘요?”


“그래! 가난한 내가 맥주 마셔야지.. 양주 마실까?”


“오늘 왜 이래? 삐딱하게…”


“니가 한번 안 주니까 그렇지!”


날 보고 눈을 홀긴다.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벌써 여섯 병째다.


“미희야! 내 노래 한번 넣어 봐라!”


자동이다. 단골로 다니다 보니, 그 날 내 기분에 따라 알아서 노래를 넣어준다.


‘추억(이필원), 찻집의 추억, 빗속의 여인……’


감정을 잔뜩 넣어서 부른다.


“오빠! 내가 자리를 옮길려는데 다음주에 한번 와 줄래요?”


“왜? 자리를 옮길려고?”


“여기는 홀도 좁고, 목이 별로 안 좋아서 그런지 손님도 별로 없고…


요 밑에 로타리쪽에 ‘궁전 실내포장’ 이라고 여기보다 규모도 크고,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하데요!”


“그래! 알았다! 다음주에 한번 들릴게!”


술값계산을 하고 얼큰하게 기분이 좋을 만큼 취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며칠이 흘러서 한 주가 넘어가고, 금요일날 갑자기 그 술집에 한번 가고 싶어서 퇴근하는 길에 들린다.


지하에 있는 술집인데, 내려가 보니 홀도 상당히 너르다. 둘러 보아도 그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한 코너에 인숙이가 앉아 있는게 보인다.


다른데를 보고 있느라 내가 다가갈때까지 모르고 있다.


“아니? 인숙씨 아녜요?”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 보더니


“아! 정수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코너 앞 의자에 앉는다.


“어쩌다 보니 이 장사하게 되었어요!”


“얼마나 되었는 데요?”


“이제 한달이 조금 넘었어요!


이런 장산 처음이라 아직 얼떨떨 해요..”


지난번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두달이 다 되어 가니까 아마 한달 있다가 이 일을 시작한 모양이다.


“정수씨는 이 집에 한번씩 와요?”


“아니요! 사실은 누가 이 집에서 장사를 한다고 한번 들리라고 해서…


그런데 그 여자는 안 보이네요?”


“아! 저기 빈 코너에 누가 온다더니만, 그 여자인가 봐…


어떤 사이인데요?”


“허어! 무슨 사이랄건 없고, 내가 한번씩 다니던 실내포장에서 장사하던 여자인데, 이 곳으로 옮긴다고 해서 한번 와 봤어요!


근데 큰일이네.. 앞으로 그 여자가 오게 되면, 그 곳에서 팔아 달라고 할텐데..”


“그렇게 해요! 단골이라면 당연히 그기서 팔아 줘야지요!”


“이렇게 합시다! 그 여자 오면 내가 이 코너에서 단골로 다니고 있다고 할 테니까


그렇게 입 맞춥시다!


그건 그렇고 맥주 좀 줘요!”


맥주 세 병과 과일을 내 온다.


큰일이다. 이 정도 인물이면, 이놈, 저놈 찝쩍거릴텐데.. 은근히 걱정된다.


의류회사에 다니다가, 여기에서 술장사를 시작한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회사에 다닐땐 힘만 들고 고생한 것에 비하면 받는 월급도 몇푼 안되고, 그 수입으로는 생활이 빠듯해서 궁리 끝에 이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아는 친구 하나가 이 장사를 하고 있는데, 하기에 따라선 수입이 꽤 짭잘하다고..


너 정도면 아마 돈을 좀 만질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남편 몰래 마련해 둔 비자금을 밑천 삼아서…


한달 동안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장사가 잘됐다.


갓 장사를 시작하다보니, 아무래도 조금 순수한 모습 때문에 그런지..아니면, 내가 한 미모(?)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그런데 여기서 정수씨를 만나게 될 줄이야…


지난번 쪽지까지 줘가며 암시를 줬는데.. 연락이 없길래 괘씸한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들었는데..


참! 인연인가 보다.


그나저나 이 남자 바람둥이 아냐?


무슨 술집을 여자따라 옮겨 가면서 술을 마시냐?


그래도 나한테 마음은 있는지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단골을 바꾸려고 그러네..


어쩌는지 한번 두고봐야 겠다.


내가 맥주를 따라서 한잔 준다.


“인숙씨도 한잔 해요!”


나 한테도 한잔을 따라 주더니, 첫잔을 같이 마시잔다.


“우리의 앞날을 위해 건배!”


앞날은 무슨 앞날?


앞으로 자주 오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애인하잔 말인가?


몇잔을 따라 주고, 또 받는다.


아무래도 나는 장사를 해야 하니까 적게 마신다.


“인숙씨! 노래 한 곡 합시다!”


노래책과 쓸 것을 갖다 준다.


정수씨가 노래를 몇곡 끄적거리더니 나에게 준다. 노래적은 종이를 보니, 적은 노래 제목사이에 빈 공간이 몇 개있다.


“왜 여기엔 안 적었어요?”


“아! 그건.. 인숙씨가 노래 부를걸 적어요!”


내가 두곡을 더 적어서 밴드에게 갖다 준다.


여긴 각 코너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지 않고, 스테이지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다.


맥주 한, 두잔을 마시고 있으니, 우리 코너 차례가 되어서, 정수씨랑 같이 나간다.


그리고, 정수씨가 부르는 첫 노래가 ‘울고 있나요’ 이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


외로운가요? 당신은………………….


………………………………………….”


나의 어깨를 껴 안고, 나를 쳐다 보면서 노래를 부른다.


꼭 대답을 들으려는 듯이…


그래! 울고 싶고 외롭다! 어떻게 해 줄껀데?


정수씨가 두어곡 더 부르고, 내가 노래를 한다.


“나혼자 이렇게 혼자 앉아서 그 사람 소식 몰라~


…………………………………………………………


오늘은 왜 안오시나…………………………………


…………………………사랑은 눈물인가봐………”


노래 부르는 나를 쳐다보는 정수씨를 보니, 이젠 자기가 왔으니 눈물 흘리지 말라는 모습이다.


노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술을 마신다.


이젠 손님들이 두 팀이 더 와서, 계속 정수씨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눈치껏 이 손님, 저 손님들을 번갈아 가며 상대를 한다.


내 마음은 정수씨와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싶지만…


한번씩 곁눈질로 정수씨를 바라보니, 술잔을 들고 음미하듯이 마시면서, 눈을 반쯤 내리깔고 계속 나를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장사 때려 치우고, 정수씨 품에 안겨 내 사정을 하소연하고 싶다.


조금 틈이 나길래 다시 정수씨 자리로 간다.


“미안해요! 손님들 때문에…”


“괜찮아요! 공인인데.. 내가 독점할 수 있나요?


언제 한번 쉬는 날 없어요?”


“글쎄.. 이번 일요일날 하루 쉬려는데.. 왜요?”


거짓말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난 뒤 하루라도 쉬어본 적이 없다.


돈이 아쉬웠길래…


그러나, 말하는 걸로 봐선 데이트라도 하자는 것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이번 일요일날 저녁이나 같이 해요!”


“그럴..까요?”


“저녁 다섯시에 H동 로타리 OO나이트 앞에서 만나요!


우리 전에 만났던 곳 아시죠?”


“아다 마다요! 그렇게 할께요!”


정수씨가 술값 계산을 한다.


육만 오천원이 나왔다. 정수씨가 십만원짜리 수표를 주더니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일어선다.


“일요일날 잊어 버리지 마세요!”


나한테 다짐을 주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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